〈디자인 실험 노트〉 #1

질문은 화면 위에서 계속된다

질문은 화면 위에서 계속된다
김송현
김송현 프로덕트디자인팀
인간 중심 디자인을 위해 리서치하고 기획하며 AI도 씁니다.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다 보면 여러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 설계하고 있는 이 흐름이 정말 자연스러운지, 혹시 사용자가 어딘가에서 망설이거나 헤매지는 않을지. 특히 직접 경험해 보기 어려운 맥락의 프로덕트를 맡게 되면, 그 사용자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오래 고민하게 됩니다. 이번 글은 사장님 사용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경험이 이후의 화면 디자인 과정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기능도, 다른 맥락에서 읽힌다

프로덕트를 설계할 때 저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합니다. 하나는 기본적인 사용 경험(pragmatic quality)입니다. 불필요한 단계를 줄이고, 필요한 정보에 더 빠르게 닿게 하며, 해석하느라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는 일이죠. 다른 하나는 기억에 남는 경험(hedonic quality)입니다. 거창한 감동이라기보다는, 사용자에게 “이 서비스가 내 상황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는구나” 하는 인상이 남는 것. 조금 덜 입력해도 되고, 조금 덜 긴장하며, 조금 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경험이겠죠. 특히, 사장님을 위한 금융 프로덕트를 디자인할 때는 이 두 경험이 더 정교하게 맞물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같은 기능이라도 업종과 상황, 자금 흐름과 생활 리듬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능 그 자체보다, 사용자가 그 기능을 어떤 맥락에서 마주하게 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 부동산 담보대출을 오픈하던 시기에도 UX 기획과 디자인을 두 달 안에 완료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럴 때 더욱 실감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내야 할수록, 사용자의 실제 맥락을 더 정확하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간격을 줄이는 데에는 결국 직접 듣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질문을 사용자와의 대화로 옮기는 일

사용자를 만나기 전에는 관련 팀들과 먼저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사장님과 맞닿아 있는 팀마다 궁금해하는 지점은 조금씩 달랐습니다. 어느 팀은 불편한 순간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알고 싶어 했고, 또 다른 팀은 만들고 있는 기능이 사용자에게 정말 필요하게 느껴질지, 또 실제로 소구될지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워크숍에서 나온 질문을 그대로 사용자에게 가져가면 안 되겠죠. 실제 사용자와의 대화에서는 맥락에 맞게 다시 풀어야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장님 프로덕트 담당자들과 사용자 사이에서 질문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도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는 중요합니다.
워크숍 현장 1 워크숍 현장 2 인터뷰 현장 1 인터뷰 현장 2
그림 1. 워크숍 및 사용자 인터뷰 현장사진과 스크립트 예시
보통 심층 인터뷰는 반구조화(Semi-structured)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질문의 큰 축은 정해 두되, 대화의 흐름에 따라 더 깊이 들어가는 형식이죠. 이번 사장님 1:1 인터뷰 때는 총 여섯 분의 사장님을 모셨고,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씩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A/B 선호를 확인하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사장님들이 실제로 돈을 어떻게 이해하고 움직이는지, 어떤 순간에 불안을 느끼고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서비스 안에서 보이는 행동 뒤에 어떤 배경이 놓여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듣고자 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차이들

총 15시간에 달하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175페이지 정도가 전사되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약본 몇 줄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맥락이 그 안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 자금과 사업 자금의 경계가 실제 운영 안에서는 어떻게 섞이는지, 가족과 자금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 금융 판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업종에 따른 돈의 감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임대업을 하는 분과 온라인 판매를 하는 분은 같은 화면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지금의 자금 습관이 과거의 실패 경험과 이어져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업종 선택 자체가 주변의 권유나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사용 경험에 대해 묻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라이프사이클과 돈에 대한 관념, 선택의 배경까지 함께 보이기 시작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UX 인사이트 보고서로 정리되는 순간 상당 부분 매끈해집니다. 하지만 화면을 설계할 때는 이 미세한 차이가 중요해집니다. 사장님을 몇 개의 전형적인 사용자상으로만 보지 않고, 서로 다른 사정과 리듬을 가진 사용자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결국 더 나은 화면과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면을 그리며 다시 생기는 질문들

서비스 기획의 큰 방향을 잡을 때는 요약된 인사이트가 도움이 되지만, 화면을 그리기 시작하면 훨씬 더 구체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특정 사용자에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설명이 충분한지, 오히려 판단 부담을 늘리고 있지는 않은지, 대출 관련 안내 문구들이 어렵지 않게 읽히는지와 같은 질문들 말이죠. 리서치 결과를 전사 자료로만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식별화한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내부에서만 참고할 수 있는 제한적인 AI 활용 방식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무언가를 대신 판단하게 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직접 들은 사용자의 맥락을 디자인 과정에서 더 자주, 더 가까이 참고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를 피그마 플러그인 형태로 연결해 디자인 작업 흐름 안에서 필요할 때마다 바로 참고해 보기도 했습니다. 인터뷰는 정해진 시간 안에서 끝났지만, 그때 들은 맥락은 화면을 설계하는 순간마다 다시 불러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방식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AI 활용 예시 1 AI 활용 예시 2 AI 활용 예시 3
그림 2. 디자인 과정에서의 내부 참고용 AI 활용 예시 (연구윤리 및 정보보호 원칙에 따라 사전 동의 후 수집한 자료를 비식별화한 후 제한적으로 활용했으며, 보관기간 이후 파기함)

그래도 처음을 여는 건 사람입니다

2016년부터 HCI와 UX를 하며 회사와 학교에서 직접 만난 사용자가 어느새 300명을 넘었습니다. 1:1 인터뷰도 있었고, FGI나 실험 전후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이 숫자를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만큼 오래 직접 듣다 보니 한 가지는 더 확실해졌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맥락을 다시 불러오고, 디자인 과정에서 자주 점검하고 싶을 때는 AI가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 알지 못한 것을 처음 여는 것은 다릅니다. 탐색적 인터뷰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특수한 사례처럼 들렸던 이야기가 나중에는 프로덕트를 보는 기준 자체를 바꿔 놓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 업종을 선택했는지, 왜 그런 자금 습관이 생겼는지, 무엇이 그 사람을 불안하게 하고 무엇이 안심되게 하는지 같은 것들은 실제로 대화를 해 봐야 비로소 무게를 갖습니다. 앞으로 더 정교한 AI 에이전트나 가상 페르소나를 만든다고 해도, 이 차이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사용자가 자신의 맥락 속에서 들려준 이야기는 다르게 남습니다. 그래서 탐색 단계의 정성 리서치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뒤에 놓인 생활 방식과 가치관, 그리고 돈을 바라보는 관념까지 함께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데이터로 가설을 점검하는 이야기

AI가 휘몰치는 와중에도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설계해야 할 부분은 다분히 많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방법론으로 리서치하고, AI를 어떻게 활용하며, 사용자의 목소리를 어디서 들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평가하는 것도 사람 사용자겠지요. 이번 글이 사용자를 직접 만나고, 그 대화를 화면 가까이에 남겨두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면, 다음 글에서는 정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data-driven personas를 생성하여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을 다뤄보려 합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의도한 화면의 핵심지표를 기준으로, 클러스터링과 LLM을 활용하여 사용성 테스트(UT)를 반복적으로 점검해 보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