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톺아보기 #1

구조화된 인플레이션과 통화 팽창의 시대

구조화된 인플레이션과 통화 팽창의 시대
상원
상원 AX팀
블록체인과 통화의 미래를 탐구하는 사람
2009년 1월 3일, 비트코인이 탄생한 날. 비트코인의 첫 번째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에는 다음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The Times 2009년 1월 3일 헤드라인
The Times 03/Jan/2009 —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영국 The Times의 헤드라인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은행들을 위한 두 번째 구제 금융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왜 이 문장을 첫 번째 블록체인에 새겼을까요?

2008년 금융위기의 진짜 비용

미국 집값이 장기간 우상향하자 은행들은 “신용이 나빠도 집값만 오르면 괜찮다”는 생각에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주택대출을 해주었습니다. 은행은 이 대출을 MBS·CDO 등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팔아버렸고, 약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금융기관에 팔려나갔습니다. 문제는 미국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대출 연체가 급증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연쇄적인 붕괴 직전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수조 달러 이상의 전례 없는 유동성 주입으로 붕괴를 막았습니다만 — 그 결과는 혹독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
  • 미국 GDP 성장률 -2% 이하 역성장
  • 미국 가계자산 약 13조 달러 이상 증발
  • 870만 개 일자리 소멸, 실업률 2009년 10%까지 상승
  • 고용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 약 6년 소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핵심 금융기관들은 구제되었고, 그 비용은 재정 지출과 통화 팽창을 통해 사회 전반으로 분산되었습니다. 이제 인플레이션은 ‘피해야 할 부작용’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위기 대응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구조화되었는가?

인플레이션이 구조화되었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이 오면 자동적으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위기 때마다 통화와 재정은 팽창되어 왔습니다.
위기 → 유동성 공급 → 부채 증가 → 인플레 압력 → 긴축 → 금융불안 → 재유동성 공급
2024년 Fed 리포트 인플레이션 지속성 계수
참고 — 2024년 Fed 리포트: 주요 국가들에서 인플레이션 지속성 계수가 기존 0.3에서 0.6으로 약 2배 상승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다

20세기 경제학의 거장 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즉, 실질 생산이 빠르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통화량이 증가한다면 장기적으로 물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통화량 × 화폐유통속도 = 물가 × 실질생산
그렇다면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통화량이 늘어도 물가는 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차기 연방준비제도 의장 지명자 케빈 워시는 AI를 통해 생산 비용이 낮아지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생산성이 충분히 빠르게 증가한다면 통화 팽창이 흡수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글로벌 M2 통화량 추이
글로벌 M2 통화량 추이 — 위기 때마다 팽창을 반복해온 통화량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GDP 대비 약 120~125%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와 유사한 수준입니다. 당시 미국은 높은 경제성장과 완만한 인플레이션, 낮은 실질금리 환경 속에서 부채 비율을 크게 낮춘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향후 미국 정책도 생산성 혁신을 통해 성장을 높이고 실질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향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의 본질은 화폐의 구매력을 장기적으로 희석시키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상수가 되는 시대

인플레이션과 통화 팽창
과거 40년의 저물가 시대는 끝났으며, 이제는 인플레이션이 기본값이 되는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화폐의 구매력이 하락하는 현상입니다. 소득 증가율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같은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줄어들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이라면, 우리는 통화의 설계 방식 자체를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통화는 정책 판단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발행되어야 할까요?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이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